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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웨이브

‘양날의 검’ AI 복원 기술
광복 캠페인으로 가능성 증명

글_ 편집실

“내가 만세를 외친 것은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었습니다.”
독립 78년을 맞았던 2023년, 유관순(1902-1920년) 열사가 독립기념관 한가운데서 103년 전 자신의 항거 이유를 밝혔다. 이어 독립 79돌을 앞뒀던 지난 8월, 한복을 입고 단장한 유 열사는 다시 한번 우리 앞에 그 고결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모든 것이 AI 복원 기술의 혜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1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국가의 존엄과 ‘그날’의 결의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의미는 살리고 감동은 더하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8월 빙그레와 함께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을 진행했다. 제79회 광복절을 맞아 진행된 이번 캠페인은 ‘옥중 순국’으로 기록된 독립운동가 중 수의를 입은 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87명에게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 한복 차림의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덧입히기 위해 기획됐다. 이들 중에는 유관순(2019년 대한민국장), 안중근(1962년 대한민국장), 안창호(1962년 대한민국장), 강우규(1962년 대한민국장), 신채호(1962년 대통령장) 등의 독립유공자들이 포함돼 있었다.

특별히, 대한제국의 주독·주불 공사관 참사관을 지내고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북경으로 망명, 항일활동을 벌인 조용하 지사(1977년 독립장)는 복원 후의 사진이 크게 달라져 눈길을 끌었다. 조용하 지사의 수의 사진에는 얼굴의 절반 정도가 점으로 덮여 있었는데 복원 후 얼굴은 말끔한 모습이었던 것. 결국 일경에게 체포돼 법정에 서게 되자 “대한의 사람으로 왜인 판사 앞에 서는 것이 하늘이 부끄럽다”며 자신의 얼굴에 먹물을 칠했던 조용하 지사의 울컥한 사연이 전해지기도 했다.

‘푸른 빛깔’ 한복 차림으로 나타난 이원록 지사(시인 이육사, 1990년 애국장) 또한 이목을 사로잡았다. 본인의 시 ‘청포도’ 속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는 구절처럼, 마침내 그 ‘약속’이 실현됐음에 사람들의 감동은 배가됐다.

사진 및 영상의 품질 향상에 기여

지난 2023년 유관순 의사가 자신의 항거 이유를 밝혔던 장면은 SK텔레콤의 실감형 콘텐츠였다. SK텔레콤은 이를 위해 ‘슈퍼노바’라는 AI 사진 복원기술을 이용해 유관순 열사를 비롯,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입체감과 생동감 있는 동영상으로 복원해 냈다.

슈퍼노바는 오래된 사진의 화질·해상도를 AI로 개선하는 기술이다. 여기에 성우가 녹음한 독립운동가의 목소리에 자연스러운 입 모양을 영상으로 구현, 말하자면 립싱크(Lip Sync) 기술로 이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당시 SK텔레콤은 “시대상을 고증해 색상을 입히고 립싱크 목소리를 재현했으나 목소리가 남아있지 않아 전문 성우의 힘을 빌렸다”고 밝혔다.

이렇듯 AI는 최근 손상된 사진과 영화 복원에 있어 획기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기존의 복원 작업 역시 세밀함에 공을 들이긴 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수작업인 만큼 완성도 또한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으로 손상된 자료의 복원 작업이 더욱 신속하고 정확해졌으며, 복잡한 이미지 패턴을 이해하고 손실된 데이터를 채움으로써 오래된 영상의 품질 향상에 혁신적으로 기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딥러닝 기반의 인페인팅(Inpainting) 기술이 사진의 결손 부분을 주변과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며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간다. 즉 생성자 네트워크(Generator)와 판별자 네트워크(Discriminator)로 구성된 이중신경망 구조의 생성적 적대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GANs)을 사용, 생성자는 손상된 영상을 복원하기 위해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하며, 판별자는 생성된 영상이 실제와 얼마나 유사한지를 판단해 디테일과 자연스러움을 살려낸다. 색상 복원이 가능한 데다, 흑백 사진을 자연스러운 색으로 복원하거나 손상된 색상을 원래 색으로 복구할 수도 있다. 이로써 손상된 인물의 표정이 보다 생생하게 재현됨 물론이다.

독립운동가 조용하 지사

독립운동가 이원록 지사

복원 기술의 진화 : 영화부터 문화재까지

딥러닝과 AI 기반 영상 복원 기술은 이미 영화, 텔레비전, 역사적 자료 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래된 영화 필름의 디지털 복원이 그 대표적 사례다.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손상된 필름을 복구하고, 색상과 디테일을 재현함으로써 현대의 시청자들이 과거의 영화를 고화질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물이나 뉴스 자료 복원에도 AI 기술은 필수다. 저해상도이거나 손상된 상태로 남아있는 오래된 기록 영상을 AI 기술로 복원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지난 2014년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달 착륙 45주년을 맞아 역사적인 ‘그 장소’를 영상으로 공개한 배 있다. 나사의 달 정찰 궤도탐사선 LRO(Lunar Reconnaissance Orbiter)가 촬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3D로 구현한 해당 영상은 45년 전 착륙 장소가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를 생생히 보여줬다.

문화재 복원 기술의 발전 역시 국제적인 협력과 기술 교류를 통해 가속화되는 추세다. 최근 완벽한 원형 복원보다는 문화재가 현재 상태까지 이어져 온 과정을 존중하는 ‘보존적 복원’ 개념이 강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훼손된 문화재의 ‘흔적’이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즉 이를 제거하기보다는 보존하며 복원하는 접근이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철학적 변화다. 다시 말해 복원을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문화재가 지닌 의미를 유지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현상이다.

윤리적 고민으로 ‘왜곡’ 피해야

AI 복원 기술은 단순히 손상된 자료를 재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과거의 역사를 되살리고, 그 속에 담긴 인물들의 결의와 의지를 현대에 전달하는 일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AI로 인해 복원 작업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이에 대한 윤리적 고민은 항상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테면, 조용하 지사의 먹물로 덮인 얼굴을 복원하는 작업은 그의 결연한 의지를 지우지 않으면서 복원의 완성도를 높이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즉 AI가 기술적으로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복원은 단순히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시간의 흔적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AI 복원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더 많은 역사적 자료를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지만, 그런 만큼 그 안에 담긴 문화적·철학적 의미의 훼손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자료

AI TIMES, ‌“광복절 강남대로에 윤봉길 의사 등장...딥브레인AI, AI휴먼 복원 기술 선보여”(2023. 8. 14.)
이데일리, ‌“앳된 유관순 열사가 눈앞에”...SKT AI기술 입은 독립기념관(2024. 9. 25.)
국가보훈부(2024), ‌“보훈부·빙그레,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추진”, 국가보훈부 보도자료(8. 2.)
문화재 홈페이지, ‌“문화재 복원 기술의 발전과 혁신 사례” (2024. 8. 21.)
https://www.youtube.com/watch?v=R92Mba1mT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