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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 SPEED

혁신을 잇다

마을 달리는 ‘ ZEN drive’,
지역을 바꾸다1)

주민 절반이 노년층인 일본 후쿠이현의 작은 마을 에이헤이지초. 쇠퇴해 가는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 마을이 선택한 해법은 놀랍게도 ‘완전 무인 자율주행차’였다. 일본 최초로 레벨4 인가를 받은 자율주행 랜드카 ‘ZEN drive’는 관광과 일상을 잇는 마을 전용도로 ‘영평사 마이로드’를 누비며 국내외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에 J-LIS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에이헤이지초가 어떻게 첨단 기술을 통해 고령화 지역의 한계를 돌파했는지 그 혁신의 여정을 들여다본다.

  • 정리_편집실

1) 『J-LIS』 (지방 공공단체 정보시스템 기구) 리포트, 2025.02.

#Back Story
일본 후쿠이현에 위치한 소도시 ‘에이헤이지초(永平寺町)’는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65세 이상인 전형적인 고령화 지역이다. 이 조용한 마을이 지난 2023년 5월, 일본 최초로 레벨4 자율주행 차량이 정식 운행 허가를 받으며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7인승 무인카트 형태의 자율주행 차량이 마을 입구에서 대표 사찰인 ‘에이헤이지(永平寺)’까지 약 2km 구간을 하루 여러 차례 오가기 시작한 것.
시속 12km 내외의 속도로 운행되는 차량은 약 20분 간격으로 3개 정류장을 경유하며 주민의 이동 편의는 물론 관광객 접근성 향상에도 기여했다. 이후 이 작은 마을의 실험은 고령화 지역의 교통 문제에 대한 실질적 안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 같은 자율주행 교통 시스템은 여전히 교통 취약 지역을 위한 유효한 해법으로 조명되고 있다.2)

일본 최초 레벨4 승인, 자율주행 혁신의 새 시대

AI 카메라 등 혁신 설비 탑재
일본 후쿠이현 에이헤이지초의 영평사 강변을 따라 여유롭게 달리는 ZEN drive는 영평사 둘레길 부근에 도착하기까지의 구간 동안 전면 패널을 통해 해당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소개한다. 동영상을 통해 제공되는 이러한 서비스는 관광 기분을 한껏 선사하며 이용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최고 시속 12km로 약 2km 거리를 10분가량 주행하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10시부터 15시까지 운행되는 해당 차량의 배차 간격은 20분이다. 요금은 성인 100엔, 중학생 이하 50엔.
ZEN drive는 에이헤이지초가 운행 주체이며, 제3섹터 방식으로 설립된 마을만들기 주식회사 ‘ZEN 커넥트’가 운행·관리를 담당한다. 운행종사자는 지역 주민이나 대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주행 구간은 에치젠철도 영평사입구역 부근에서부터 영평사 둘레길 부근까지 약 6km에 이르는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도로 ‘영평사 마이로드’로, 이 중 아라타니(荒谷) 정류장에서 영평사 둘레길 부근 종점인 시비(志比) 정류장까지 2km 구간은 레벨4에 해당하는 완전 무인 자동운전 구간, 시작 지점부터 아라타니 정류장까지 4km 구간은 레벨2, 즉 유인 자동운전으로 운행된다.
노면에 매설(埋設)된 전자유도선을 따라 주행하는데, 일반 차량 출입이 제한된 지역에서 운행되는 차량은 AI 카메라, 밀리파 레이더, 초음파 소나 등 다양한 센서를 탑재해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한 사양으로 설계됐다. 원격 감시를 통해 한 명의 운행 관리자가 최대 3대까지 동시 관리할 수 있다. 2) 홍상지 기자, “무인카트가 동네 돌아다닌다…일본 고령화 마을 살린 자율주행”, 중앙일보, 2024.10.0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791

공조 시스템으로 운행 뒷받침
에이헤이지초 자율주행 사업의 특징 중 하나는 ‘자가용 유상 여객 운송제도’다. 지역 주민이 직접 드라이버로 참여하는 ‘근조(近助) 택시’ 활동을 통해 지역 내 교통 불편 해소는 물론, 도시락 배달과 우편물 배송 등 다양한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21년 국토교통대신 표창과 2022년 총무성 ‘고향 만들기 대상’ 수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이 지역 기반 사업을 자율주행차 ZEN drive에 적용해 상호부조와 지역 일자리 창출, 안전성 강화까지 꾀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한편 ZEN drive 역시 2021년 지역 공공교통 혁신 사업으로 국토교통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ZEN drive의 운행구간인 ‘영평사(永平寺) 마이로드’는 2002년 폐선된 게이후쿠(京福) 전철 영평사선 궤도를 마을 도로로 정비한 곳으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개방된 이래 지금까지 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율주행, 고령화·교통난의 해법 제시

고령 문제 및 드라이버 부족 해소
자율주행 연선지구는 고령화율 40%를 초과하는 지역이다. 후쿠이(福井)현 내에서도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한 편으로, 후쿠이현은 인구 대비 자가용 보유율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인구당 고령자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전국 평균을 큰 폭으로 상회하고 있었다.
게다가 2024년에는 대중교통 부족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커뮤니티 버스 이용자 수는 피크였던 2010년 5만 161명에서 2022년 약 1만 6,501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 수단 확보가 지역의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표면화되고 있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혼자서 여러 대의 차량을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 마을 사람들의 안전과 안심, 그리고 운전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율주행’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실증 넘어 실현까지
에이헤이지초는 2016년부터 경제산업부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자율주행 실증 사업에 참여했다. 도로 인프라 정비와 주민설명회, 시승회 실시 등을 거쳐 2018년에는 공용도로에서 실증 실험을 진행했으며, 세계 최초로 1:2(혼자서 2대의 차량을 원격 조작) 실증에 성공했다. 이어 2020년에는 국내 최초로 레벨3(드라이버가 탑승한 시스템 주도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작했고, 2023년에는 국내 최초로 레벨4 자율주행 서비스를 실현했다.

주민공감으로 실용화 성공
자율주행 사업 추진 과정에서는 “왜 자율주행이 아니면 안 되나?”라는 청내의 의문과 “자율주행은 안전한가?”라는 주민들의 염려가 존재했다. 유지 비용이 높고 특정 루트만 운행된다는 점에서 비용 대비 효과에 의문을 제기됐던 것. 그러나 영평사 운송 루트가 관광자원으로서 유용하며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된다는 점을 강조,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단기간 실증에 그치지 않고 실용화까지 목표로 하는 비전을 공유했다. 아울러 일반 차량이 다니지 않는 자전거·보행자 전용 마을 도로 ‘영평사 마이로드’를 운행 루트로 선정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설명회와 시승회도 적극적으로 개최해 주민들이 ZEN drive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에이헤이지쵸의 자율주행 테스트는 이렇듯 컨센서스 형성과 시스템 개발을 병행하며 꾸준히 진행돼 왔다.

실험에서 실용화까지의 도전과 과제

‘관광형 자율주행’의 실험
세계 최초의 1:2, 국내 최초의 레벨3, 4로 자율주행의 선두를 달려 온 에이헤이지초지만, 선두 주자였기 때문에 겪는 홍역도 있었다. 선례가 없어, 제도면에서의 해석과 운용 등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실증과 실용화에 있어서도 매끄럽지 않았다. 자율주행을 시도하는 ‘실증’이 ‘실용화’ 단계로 접어들면 비용 대비 효과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기존의 택시가 더 저렴하지는 않은지, 제한된 루트만 주행하면 주민의 의견에 부응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를 선결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관계자들은 자율주행만의 시각에서 해결책을 모색, ‘관광서비스로서의 운행’이라는 해법을 찾았다.
우선 일반 차량에서는 어려운 전면 패널을 설치해, 주행 중 동영상을 상영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는 기업이 제작한 에이헤이지초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10분 분량의 영상으로, 승객에게 탑승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제공한 것이다. 이 색다른 시도는 이용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시승 경험 여부에 따라 만족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시승한 적이 없는 응답자 중 약 60%가 “이용하고 싶다”고 답한 반면, 시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에서는 90% 이상이 재이용 의사를 밝혔다. 탑승객의 대부분이 관광객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시도는 관광 활성화 방안으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입증한 셈이다.
이처럼 승차 시간을 엔터테인먼트화함으로써 “속도가 느리다”, “운영 비용이 높다”는 단점을 관광자원으로서의 장점으로 전환한 동시에, 자율주행이 아니면 제공할 수 없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함으로써 자율주행 기반 사업 추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레벨3에서 4로의 벽, 완전 자율화의 도전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완전 자율화’라는 고지를 넘는 과정은 시스템 차원의 한계와의 싸움이었다.
레벨3 자율주행이 운전 중 돌발 상황에 사람의 개입이 가능한 구조라면, 레벨4는 시스템이 모든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승무원도 없고, 비상 시 개입할 사람도 없는 조건에서 ‘100% 안전’을 실현해야 하는 셈이다. 따라서 취객이 차량 내에서 잠들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갑작스레 도로로 뛰어드는 동물에 즉시 반응할 수 있는지, 태양 플레어에 의한 통신 장애는 발생하지 않을지 등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까지 포함해 시스템 정밀도를 높이는 작업을 이어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10월 29일 운행 중이던 차량이 궤도 옆에 세워진 무인 자전거에 접촉하는 일이 있었다. AI 카메라가 자전거 후방만 포착하면서 이를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충돌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유사 상황에 대비해 인식 알고리즘을 보완하고 안전 조치를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는 레벨4의 조건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철저한 예외 대응 능력이 요구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에이헤이지쵸의 자율주행은 지금도 ‘100% 안전’을 향한 실험과 보완의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 기술은 여전히 진화 중이며, 그 끝을 향한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주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 자율주행 실용화의 기반 다지기

실용화 위한 치밀한 논의
에이헤이지초 자율주행 사업은 빠르게 발전해 왔지만, 무엇보다 도입 목적에 대한 초기 논의가 핵심이었다. 해당 사업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실용화를 목표로 삼고, 촌장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준비 과정을 꼼꼼히 검토한 점이 큰 힘이 됐다”면서 “실증 단계를 넘어 실용화로 나아가면서 여러 과제가 발생했으나, 다가올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실증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자율주행 장비는 패키지화되어 도입이 쉬워졌고, 선진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한 뒤, “도입을 고민하는 지자체에 우리의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과 함께 진화하는 ZEN drive, 공공교통의 미래를 그리다
에이헤이지초는 현재 자율주행을 관광자원으로 구체화하는 한편, 애초 목표였던 대중교통 수단으로의 활용 가능성도 적극 검토 중이다. 그 일환으로 승차요금 체계를 관광객과 주민으로 이분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영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관광객에게는 영상 시청 요금을 포함한 운임을, 영상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주민에게는 기본 운임만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내년 시행을 목표로 한다.
생활 밀착형 서비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초등학생 하교 지원, 이동 판매차 유치 등 기존 사업에 더해, 최근에는 자율주행 근조 택시의 조직적 운용 거점으로 공민관 신축이 결정됐다. 이는 주민이 직접 기기를 운용하고, 선로 주변에서 학습과 체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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