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이미 다가온 미래

글_김상윤(중앙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연구교수/한국산업기술진흥원 객원연구위원)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일상의 경험

최근 코로나19가 세상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유통업계의 피해는 심각하다.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당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상점이 문을 닫거나, 단축 영업을하는 등 제한 조치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소상공인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인류에 가져온 변화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에게 숨겨져 있던 욕구를 들춰내거나, 수 년 후 기대됐던 변화를 더 빠르게 가져온 부분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행으로 우리는 비대면(Un-contact)을 꼽는다. 비대면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세상에 없던 것은 아니었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 일상을 파고든 2000년대 전후부터 다수의 업종에서 비대면 영역은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일부 영역 혹은 특정 기능을 중심으로 비대면이 조금씩 확대되던 중이었다. 과거, 2000년 즈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은 온라인 웹으로 예매가 이루어졌으나, 즐겨 먹는 자장면 주문은 전화로만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디지털이 미치지 못한 전통 영역까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아예 과감하게 메타버스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업체들도 있다. 2000년대 이후 발전해 온 전자상거래 기술은 소비자의 쇼핑 과정 중 ‘결제’를 손쉽게 만든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소비자들은 판매업체가 올려놓은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결정’을 하고, 최종적으로 ‘결제’라는 행위를 버튼 하나로 진행한다. ‘상점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 ‘클릭 몇 번으로 결제할 수 있다.’, ‘문 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다.’라는 장점이 있지만, ‘쇼핑 전체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중간에 많은 단계가 생략되어 있다. 제품을 눈으로 볼 수 없고, 정보를 꼼꼼히 비교하려면 ‘웹 발품’이 필요하며, 선택한 제품을 카트에 담는 재미를 즐길 수 없다. 쇼핑의 재미가 그 과정에 있다면, 전자상거래는 별 재미없이 편의만 제공해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유통업계의 메타버스 전환 시도는 바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소비자가 쇼핑에 대한 진정한 느낌을 갖도록 해준다.

월마트의 VR 쇼핑 사례 (출처:월마트유튜브)
유통업의 메타버스 트렌드

월마트의 VR 쇼핑은 실제 마트에 방문하여 물건을 고르고, 선택하고, 쇼핑 카트에 넣고, 데스크에서 결제하는 경험을 실제와 매우 유사하게 가상에서 경험하게 해준다. 이용자들은 단순히 빠르게 구입하여, 물건을 받는 최종 목적 달성뿐만 아니라, 쇼핑 과정에서의 재미와 다양한 경험을 충족할 수 있다.
AR(증강 현실) 기술도 쇼핑 영역에 파고들고 있다. AR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은 현실세계에 데이터를 겹쳐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현실의 공간이나 사물을 인식할 때, 눈과 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AR 기술을 활용하면 가상공간의 디지털 데이터를 현실세계에 겹쳐서 보여준다. 이 용자는 눈과 귀만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스웨덴의 가구업체 이케아는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에 손님이 줄어들자, 앱에 AR 기술을 탑재하여 고객들이 선택한 쇼파를 직접 집 거실에 놓아볼 수 있다. 과거 우리는 가구를 구입할 때 직접 눈으로 보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메타버스 기술들은 현실로 착각할 수 있는 정교한 가상공간을 만들어 가구를 우리 집 거실에 놓아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스마트폰 화면이 작은 메타버스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현실과 너무 괴리가 크다. 조잡하다. 불편하다.”라고 인식한다면 메타버스가 아니지만, “정교하다. 현실로 착각할 만하다. 현실세계의 충분한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라고 인식한다면 바로 그것이 가상과 현실이 결합하는 메타버스 세상이 된다.

이케아의 AR 쇼핑 사례 (출처:이케아블로그)
물리세계와 가상세계의 결합

최근 이처럼 VR, AR 기술 등 가상세계를 활용하는 기술이 진전되면서, 우리는 가상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가상세계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Web 1.0 시대의 변화를 우리는 ‘가상세계 창조 혁명’으로 칭할 수 있다. 물리세계에 있던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로 이동하면서, 가상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혁명’이었다. 20세기 후반 IT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정보를 처리, 저장, 통신하고, 결합시키고, 복제하는 비용이 급격히 낮아진 것에 기인한다. 정보화 혁명, 인터넷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3차 산업혁명이 곧 가상세계 창조의 과정이었다. 가상세계 창조가 완료된 결과로 우리는 4차 산업 혁명을 맞게 되었다. 학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기술 개념으로 CPS (Cyber Physical System; 가상물리시스템)를 꼽는다. 3차 산업혁명으로 완성된 가상세계가 이제는 물리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그 활용도를 높이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을 맞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가상세계 창조’ 이후의 세계다. 요컨대, 1980년대부터 약 30년에 걸쳐 진행된 3차 산업혁명이 물리세계의 정보를 가상세계로 옮겨 놓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에 집중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가상세계를 물리세계로 회귀시키는 아날로그화 (Analogation) 또는 가상세계와 물리세계를 연결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가상세계와 물리세계가 동일시되기도 하고, 이를 넘어 오히려 가상세계가 물리세계를 지배하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 익숙한 존재가 되어버린 자율주행차가 대표적 사례다. 자율주행차가 자율주행을 하다가 왼쪽에는 고양이, 오른쪽에는 어린아이가 있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자율주행차에 달려있는 센서는 고양이와 어린아이의 크기, 떨어진 거리 등을 인식한다(1. 수집). 센서가 이를 인식하는 순간, 고양이와 어린아이는 이제 더이상 현실세계의 정보가 아니라, 디지털화된 정보인 데이터로 변환된다. 데이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세계로 올라가 눈앞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파악한다(2. 분석). 주로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데이터를 저장, 관리, 분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은 판단의 과정이다. 만약 브레이크를 밟아도 고양이와 어린아이 모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고양이를 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3. 판단). 인공지능 자율주행 기술은 판단 과정의 핵심 기술이다. 최종적으로 인공지능 자율주행 기술은 왼쪽으로 핸들을 꺾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자동차는 왼쪽의 고양이를 치는 움직임을 취하게 된다(4. 제어). 이렇게 자율 주행차는 현실세계의 정보를 가상세계에서 데이터화하여 알 고리즘을 통해 판단하고 현실세계에 역으로 영향을 준다.
구글 웨이모 자율주행 시스템의 경우 자율주행차가 갖고 있는 라이다(Lidar)라는 센서를 통해 현실세계의 장애물과 거리의 모습, 신호등을 인식한다. 웨이모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이러한 정보를 디지털화된 데이터로 처리하여 가상공간에 구현하고 이를 자율주행에 활용한다. 정확히 말하면,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현실세계를 주행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를 똑같이 복제한 가상공간을 주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서의 움직임을 만든다.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현실세계를 똑같이 복제한 가상공 간을 주행하는 것이다. (출처:웨이모)
4차 산업혁명, CPS, 디지털 트윈, 메타버스는 모두 같은 맥락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가상공간을 우리는 디지털 트윈이라고도 표현한다. 제조업, 에너지 산업과 같은 전통 산업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인데, 스마트 공장, 스마트시티와 같은 지능화, 원격제어가 필요한 산업 영역에서 진화하고 있는 개념이다. 전 세계 스마트 공장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지멘스는 디지털 트윈 개념을 적용하여, 현장의 설비를 디지털 공간에 디지털 쌍둥이로 구현한다. 작업자는 자신의 컴퓨터 속이 디지털 쌍둥이를 제어하면 현장의 설비가 그대로 연결되어 실시간 제어된다. 지멘스는 원격제어 솔루션을 통해 많은 고객사의 공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인 월마트의 VR 가상 쇼핑, 구글 웨이모의 가상공간을 활용한 자율주행, 지멘스의 가상공간을 활용한 원격 설비 제어. 세 사례 모두 가상세계와 물리세계를 연결 혹은 상호작용하게 하여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쓰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디지털 기술로 인한 가상세계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현시대에, 가상세계와 물리세계가 연결되거나, 상호작용하거나, 서로 결합하여 쌍둥이가 되거나, 혹은 아바타라는 것을 이용하여 우리가 직접 가상세계로 들어가거나.
이 모든 것이 같은 맥락의 변화 아닐까?

산업 현장에서의 디지털 트윈 구현 (출처:지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