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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웨이브

미디어 파사드
디지털 예술로 도심을 채색하다

글_ 편집실

멜버른 중심부의 인기 있는 공공 공간인 페더레이션 스퀘어에 있는 SBS 텔레비전 건물 외벽에 축제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조명이 투사

2020년 여름,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사람들은 서울 강남의 코엑스 전광판으로 보이는 ‘미디어 아트’를 감상하며 답답함을 달랬다. 가로 81m, 세로 20m의 LED 거대한 수조 속 파도의 출렁임은 생생한 현실감과 압도적 입체감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었고, 국내 언론은 물론 다수의 외신도 하나같이 그 장관을 담아냈다. 이것이 바로 빛으로 그리는 예술, 미디어 파사드다.

다채로운 미디어 외관과 레이저 쇼를 갖춘 경복궁 광화문 야경

도시 경관을 재창조하는 디지털 예술

‘미디어 파사드’는 ‘대중매체’를 의미하는 미디어(media)와 ‘건물의 정면, 혹은 중심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파사드(facade)’가 합쳐진 용어다. 간혹 디지털 경관 조명, 미디어 보드, 미디어 월, 디지털 사이니지 등과 같은 용어와 혼재돼 사용되는 단어지만 기술적 구현과 활용 수준을 감안하면 미디어 파사드로 통칭하는 것이 적합하다.

미디어 파사드는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가 건물 외벽에 부착되거나 투사되는 형태로, 주로 LED 조명패널, LED 디스플레이, 프로젝션 맵핑, 키네틱 등의 4가지 디스플레이 기술이 접목돼 구현된다. 이로써 순식간에 건물 외벽은 커다란 대형 스크린으로 재탄생하고, 빛과 영상이 활용된 그래픽 요소는 하나의 스토리나 메시지로 가시화된다. 말하자면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에 정보 전달 기능에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를 얹어 만든 하나의 콘텐츠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미디어 파사드는 마치 도심 한복판에서 초대형 공연을 보는 듯한 시각적 즐거움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러한 강점으로 과거 광고, 홍보와 같은 분야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했던 미디어 파사드는 최근 도시 경관과 어우러지는 예술의 범주로 개념을 확장, 폭넓게 활용되며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실내 미디어 아트에서 공공예술로의 확장

미디어 파사드는 이미 20년 전부터 실·내외 공간에서 미디어 아트(Media Arts)로 활용돼 온 개념이다. 그동안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미디어 아트는 각종 전시회에서 빛과 영상을 통해 입체적인 몰입감을 제공하던 방식이며, 지금도 이 방식은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적인 전시회 CES 2023에서는 LG가 전시장 입구에 올레드 플렉서블 사이니지 260장을 이어 붙인 초대형 조형물 ‘올레드 지평선(OLED Horizon)’을 설치해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당시 LG 측은 이에 대해 “지난 10년간의 초격차 행보와 앞으로 펼쳐질 LG 올레드의 미래가 맞닿아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1) 또 여러 미술 전시회에서는 인터렉티브를 통해 관람객에게 명화 속을 거닐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미디어 파사드는 실내 공간의 미디어 아트가 실외 공간에서 구현되는 것으로 쉽게 이해된다. 미디어 아트에서 공공예술 분야로 확장되어 가는 미디어 파사드는 이렇듯 광고, PR, 마케팅, 이벤트, 공연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활용 중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최초의 미디어 파사드는 2004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건물 외벽에 설치된 홀로그램과 LED를 이용한 형태였다. 당시 갤러리아 백화점의 미디어 파사드는 백화점 이벤트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소통은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후 시청역, 삼성화재 빌딩, 역삼동 GS 타워, 서울스퀘어 등 주요 장소가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경복궁과 같은 문화재 건물과 지역 관광지에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1) https://www.lg.co.kr/media/release/25754

CES 2023 LG 전시장

도시 경관과 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길

미디어 파사드는 화려한 도시의 경관을 연출하는 동시에 문화적 가치를 재창출함으로써 경제적인 효과를 낳기도 한다. 야간에는 어두워서 관람이 어려운 관광 명소나 문화재를 화려한 조명으로 감싸서 관람성을 높이며, 주간에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상호작용으로 색다른 매력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디어 파사드는 관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도시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실제로 1989년부터 시작한 프랑스 리옹(Lyon)시의 ‘빛 축제’는 미디어 파사드를 적극적으로 활용, 관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도시 경제를 활성화시켰던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안동시가 ‘새로운 안동’을 표방하며 안동댐 임하댐 등 수자원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활용, 댐사면에 대형미디어파사드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일상 속 공공 예술로 자리 잡다

이제 미디어 파사드는 대형 이벤트 이외에도 생활 중심권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경관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인해 더욱 입체적이고 몰입감 있는 스펙터클을 구현할 수 있어 도시 경관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과거 건물의 정면이나 입면으로 한정했던 미디어 파사드 표현 범위는 어느새 건물 전체로 확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건축물 자체가 미디어 파사드의 일부로 통합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디어 파사드는 고정된 건축물의 정적인 이미지를 해체하고 움직이는 빛과 내러티브로 새롭게 변환시킴으로써 건축물의 본연의 가치를 강화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이미지 전달을 넘어서서 건물의 형태와 기능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런 강력한 메시지 덕분에 미디어 파사드는 일반 광고성 메시지와는 달리 대중들이 일부러 찾아서 즐기는 매력을 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미디어 파사드는 단순한 상업적 용도를 넘어 시나브로 공공 예술의 일환으로 간주되며 일상의 공간에 예술적 표현을 입혔고, 이로써 공간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중요한 도구로서의 입지를 굳혀 온 셈이다.

혁신 기술과 대중 참여로 새롭게 진화 중

가상 세계(Virtual reality)나 가상 객체(Virtual Object)의 표현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도 미디어 파사드의 새로운 기법들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네덜란드의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Heineken)’은 지난 2014년 서울스퀘어 건물 외벽을 통해 뉴캔 디자인을 영상으로 재구성해 내보낸 바 있다.2) 예술적 콘텐츠로 재해석하고 모바일과 연동된 증강현실(AR) 기술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으며, 이에 가던 길을 멈춘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들고 앱으로 접속하며 특별한 즐거움을 향유했다. 이러한 접근은 장소와 미디어 예술에 혁신적 기술과 대중의 참여를 추가함으로써 감각적 경험을 이전보다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냈다.

프랑스의 생수 기업 ‘콘트랙스(Contrex)’ 또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총2편의 미디어 파사드미디어 파사드를 활용, 이벤트 형식의 광고를 진행했다.3) 당시 해당 광고는 프랑스 광장에 10개의 분홍색 자전거를 설치하면서 흥미로운 광경을 연출했고, 관객들이 자전거 또는 스텝퍼(steppers)와 같은 기구로 운동을 시작하면 LED의 움직임은 페달 또는 스텝퍼의 속도에 따라 변하도록 제작됐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자가발전으로 음악과 LED전기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4)

이와 같은 사례들은 미디어 파사드가 스펙터클한 도시 연출을 통해 공간의 창의적 경험을 추구하며 정보의 연결, 미디어의 연결, 대중 참여를 동시에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2) https://www.youtube.com/watch?v=HP2B85BZ3Lc
3) https://www.youtube.com/watch?v=Byz-fXwGS2g
4) 김호(2016), 인터렉티브 미디어 파사드에 나타나는 미학적 특징, 한밭대학교시각디자인학과

‘빛의 축제’ 기간 중 테로 광장에서 바라본 프랑스 리옹시청의 웅장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