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ID 시네마
AI가 쓴 시나리오가 스크린 위에서 현실로 펼쳐진다. 독일의 가상 도시에서 노동자 클레리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은 인간 감정과 기술적 재현의 간극을 드러내며,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 전개와 독창적 대사 톤, 리듬감 있는 편집은 기존 영화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 영화 <그를 찾아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AI가 빚은 서사를 기반으로 영화 세계를 구축, AI 시대 창작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2025년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그를 찾아서>는 전 세계 영화 산업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AI가 쓴 시나리오로도
관객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
영화는 독일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가 10년 전 공식 석상에서 남긴 “4,500년 후에도 컴퓨터는 내 영화만큼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라는 도발적인 발언에서
출발한다. 폴란드 출신 피에트르 비니에비츠 감독은 이 발언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AI와 가장 거리가 먼 헤어조크의 시나리오를 AI에 학습시켰고, 그 결과물이 바로 <그를
찾아서>다.
작품은 독일의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노동자 ‘클레리’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추적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개된다. 실종 사건의 배후에는 ‘인피니티 머신’이라는 의문의
기계 장치가 존재하는 듯한 암시가 깔려 있으며, 이 설정은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긴장을 동시에 자아낸다. 사건을 좇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주변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은 인간의 다층적
내면과 기술적 재현 사이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뷰, 허구, 실제 배우의 연기를 혼합한 이 영화는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AI 시대 예술 창작의 의미와 윤리, 인간
고유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피에트르 비니에비츠 감독에 따르면, 영화 <그를 찾아서>의 제작은 AI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였던 2019년부터 시작됐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제작 과정은 유동적인
변화를 따랐으며, 음성 합성이나 영상 편집 지원 등 다양한 툴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피에트르 감독은 “<그를 찾아서>는 미래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개인적인 성찰이다”면서 “기술의 발전보다 그 불안정성과 인간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시도이다”1)고 덧붙였다.
1) https://www.dongadaily.kr/4723
영화 <그를 찾아서>, 이미지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를 찾아서>는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영화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논쟁을 촉발한다. AI와 인간 창작자의 협업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제작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하는 동시에, AI 창작물의 저작권·창작권 문제라는 민감한 화두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다. 제작비 절감, 제작 기간 단축, 시나리오 다양화 등 산업적 장점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인간 창작자의 역할 축소와 고유성 상실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관객은 “AI가 집필했다”는 사실만으로 호기심을 갖게 되며, 예측 불가능한 전개, 인간의
손길과 알고리즘이 뒤섞인 독특한 대사 톤, 기존 상업 영화와 다른 리듬감 있는 편집을 경험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를 찾아서>를 기존 장르 구분을 넘어선
‘하이브리드 영화’로 만들며, AI 시대 영화가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를 찾아서>가 기존 AI 활용 영화들과 명확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마테오>가 AI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아 인간과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이라면, <그를 찾아서>는 AI를 ‘작가’로 세워 이야기 자체를 설계하게 한 점이 다르다. 또한 <COZI>가 AI를 창작 보조로 활용해 인간
중심 서사를 확장했다면, <그를 찾아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AI가 빚은 서사를 토대로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관객은 AI가 스스로 구성한 서사가 가지는
내적 일관성과 독창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으며, 인간적 판단과 AI 알고리즘이 결합했을 때 생겨나는 예측 불가능성을 실감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 시나리오는 오직 인간의 창의력으로 만들어지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구글 딥마인드와 오픈AI 같은 기업들이 선보인 대규모 언어 모델은 이제
완결된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아크2)를 설계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캐릭터 아크는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인물이 겪는 내면 변화나 성장을
곡선처럼 그려내는 구조를 뜻한다. 이미 AI가 집필한 단편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상영됐고, 광고업계에서는 AI가 만든 짧은 스토리보드가 실제 촬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AI가
시나리오 작가로 본격 주목받은 계기는 2016년 단편 영화 <선스프링(Sunspring)>으로, ‘벤자민(Benjamin)’이라는 AI가 집필한 SF 단편은 다소
비논리적이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같은 해 IBM의 AI ‘왓슨’은 영화 <모건(Morgan)> 공식 트레일러 제작에 참여하며 편집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후 ChatGPT, Sudowrite, DeepStory 등 다양한 AI 툴이 등장하면서 장르별 플롯과 캐릭터 아크 제안, 스토리보드 초안 작성, 대사 톤과 캐릭터
개성 자동 조정까지 가능해졌다.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공동 작가’로서 영화계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2)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이야기 속에서 인물이 겪는 내면의 변화 혹은 성장을 곡선처럼 그려낸 구조를 의미한다.
영화 <Sunspring>, 이미지 출처 YouTube
영화 <Morgan>, 이미지 출처 YouTube
<그를 찾아서>는 향후 AI 기반 영화 제작 흐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관객 반응이 긍정적이라면 AI 시나리오 기반 장편 영화가 본격 확산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AI 창작의 한계를 확인하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실험적 결과로 의미를 남기게 된다. 현재 영화계는 촬영·편집·CG 등 기술 도입을 폭넓게 진행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인 시나리오 영역에서 AI가 주도권을 쥔 사례는 드물다. <그를 찾아서>는 그 실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AI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창작과 인간성의 경계를 성찰하게 만들며, AI가 생성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 감정과 판단, 윤리적 선택이
얼마나 재현될 수 있는지를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 예술의 모습에 대한 논의를 자연스럽게 촉발하고, 인간 창작자의 개입과 AI가 제공하는 다양성,
예측 불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능한다. 불완전함과 실험적 특성은 오히려 작품의 메시지를 강화하며, AI 시대 창작의 의미와 한계를 동시에
탐구하게 만든다.
• https://blog.naver.com/only-one-storyteller/223947874154
• https://www.bifan.kr/program/program_view.asp?pk_seq=8001
• https://blog.naver.com/dasahee/223825298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