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ID 시네마
AI 기술이 예술과 만난 새로운 실험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배우 나문희의 모습을 기반으로 제작된 국내 최초의 AI 단편영화 프로젝트 <나야, 문희>가 지난해 말 개봉하며 AI 영화산업에 흥미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기존의 가상 인간이나 디지털 캐릭터 중심의 AI 영화들과 달리, 실제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 기반의 디지털 휴먼을 활용한 <나야, 문희>는 AI와 인간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창작 가능성을 열었다. 이는 AI 기술이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영화 속 감동을 창출하는 창작 파트너로서의 잠재력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나야, 문희>는 배우 나문희를 중심으로 한 단편영화 앤솔러지(anthology)로, 인공지능으로 구현된 실제 배우의 외모와 목소리를 통해 더욱 높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특히 배우 본인의 초상권을 공식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AI 기술 사용의 모범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나야, 문희>는 CGV와 함께한 ‘AI 단편영화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다섯 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각 고유한 장르와 서사를 통해 AI와 인간, 감정의 교차점을 탐색한다. ‘쿠키게임’은 커피숍에서 벌어진 갈등을 통해 인간과 AI 사이의 감정적 경계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나문희 유니버스’는 젊어진 나문희가 다양한 배역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그린다. ‘지금의 나, 문희’는 젊음의 불안과 노년의 회한 사이에서 삶의 본질을 성찰하고, ‘DO YOU REALLY KNOW HER’는 나문희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CIA 요원의 시선을 통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마지막으로 ‘산타 문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잊고 있던 동심을 되찾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처럼 <나야, 문희>는 AI 기술을 통한 새로운 창작 방식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실제 배우의 디지털 재창조라는 혁신적 시도로 영화 제작 방식의 미래를 제시하는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영화 <더 콩그레스, 2013>, 이미지 출처 씨네21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탄생한 AI 시네마. 국내 최초로 실제 배우의 얼굴과 음성을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단편영화 앤솔러지 <나야, 문희>는 단순한 기술적 시도가 아닌, 배우 나문희 본인의 동의를 얻어 초상권을 정식으로 확보하고 활용한 첫 사례로서 영화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AI 기술이 창작의 도구를 넘어, 윤리적 활용의 기준을 함께 요구하는 ‘툴’이라는 점을 시사하며, 인간과 AI의 공존 가능성을 스크린 위에서 실험하는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했다.
‘AI 배우’라는 새로운 개념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AI 액터(AI Actor)’ 실험의 국내 버전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와 유사한 시도들이 이어져 왔다. 예컨대, <더 콩그레스(The Congress, 2013)>는 배우 로빈 라이트가 자신의 디지털 복제에 초상을 넘기는 설정을 통해 AI와 계약, 윤리의 경계를 다룬 애니메이션-실사 하이브리드 작품이다. <레플리카스(Replicas, 2018)>는 사랑하는 가족을 복제하려는 과정을 통해 인간 정체성과 디지털 존재 간의 경계를 탐구하며, <스타워즈: 로그 원(Rogue One, 2016)>은 CG 기술을 활용해 고인이 된 배우 피터 커싱의 얼굴을 복원하거나 과거의 캐릭터를 재현한 사례로 꼽힌다. 또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는 멀티버스라는 공간 속에서 AI 정체성과 인간 정서를 교차시키며, 서사적 실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나야, 문희>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한국 영화계가 AI와 인간의 창작 협업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한 사례로 기록됐다.
영화 <아이리시맨, 2019>, 이미지 출처 씨네21
<나야, 문희>는 한국 영화계가 AI 배우를 활용한 창작 실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서, AI 기술을 통해 배우의 정체성과 서사를 다층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고령의 배우가 젊은 모습으로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는 시도는 배우의 시간적 한계를 초월한 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나아가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해 감정적, 예술적 울림을 다시금 스크린에 불러오는 활용 방식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AI 기술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배우의 예술성과 인간의 서사를 더욱 깊이 있게 확장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령의 배우가 젊은 모습으로 다양한 장르를 연기하는 시도는 이미 할리우드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2019)에서는 디에이징(De-aging) 기술을 통해 70대의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가 30~40대 시절의 모습으로 등장해 한 인물의 전 생애를 하나의 역할로 소화하는 기술적 진보를 보여줬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2023)에서는 80대의 해리슨 포드가 영화 초반부에서 40대 시절의 모습으로 복귀, 젊은 시절과 현재의 모습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서사의 깊이를 더했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19)에서는 생전에 촬영되지 않은 장면들을 위해 캐리 피셔의 기존 촬영분과 CG 기술을 결합해 ‘젊은 레아 공주’를 복원했고, 이와 유사하게 <로그 원>(2016)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피터 커싱이 디지털 기술로 재현돼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배우의 나이와 생애의 한계를 넘어, 시간과 존재를 확장하는 창작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나야, 문희> 또한 이러한 흐름과 맞물리며, AI 기술을 통해 고령의 배우가 다시금 젊은 모습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배우의 예술적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동시에, 관객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했다.
<나야, 문희>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실험하는 최초의 시네마 유닛임이 분명하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술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배우의 동의를 바탕으로 AI 기술을 활용해 얼굴, 표정, 음성을 정밀하게 재현함으로써 디지털 휴먼이 서사 안에서 하나의 완성도 있는 캐릭터로 기능하게 만든 사례인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2019>, 이미지 출처 씨네21
“기술이 예술을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질문을 “기술이 예술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으로 바꿔볼 수 있다. 실제로 AI 배우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그 안에는 창작자의 저작권, 배우의 초상권, 고인의 명예 보호, 감정의 진정성 같은 기술만으로는 풀 수 없는 예술적·윤리적 쟁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AI가 더 이상 배경에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창작의 새로운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고령의 배우가 젊은 모습으로 다시 연기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목소리로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고, 현실과 상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이야기의 방식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기억을 보존하고 예술을 연장하는 하나의 문화적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야, 문희>는 바로 그 가능성의 시작점에 선 작품이다. 기술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서사와 더 깊은 감정을 상상하게 만드는 시도. <나야, 문희>가 가진 가장 큰 예술적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KCA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AI 기술로 리얼리티 그 이상을 초월하는 영상콘텐츠”, 미디어 이슈&트렌드 Vol.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