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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 SMILE

KLID 시네마

AI가 만든 배우, 가상의 얼굴로
진짜 감정을 연기하다

최근 국내 AI 영화 제작계는 두 편의 실험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간 창작자와 첨단 AI 기술이 손잡은 <마테오(MATEO)>와 <COZI>는, 가상의 ‘배우’와 실제 지역 역사가 AI라는 매개를 통해 어떻게 독특하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이다.

  • 글_편집실

영화 <마테오, 마테오 AI 스튜디오>, 이미지 출처 YouTube•경기콘텐츠진흥원

영화 <마테오>

존재하지 않는 배우, 영화 <마테오>의 실험

2024년 대한민국 AI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단편 영화 <마테오(MATEO)>는 상상력을 넘어 창작의 방식 자체를 뒤흔든 실험으로 기록된다. 이 영화의 중심에 바로, 실존 배우가 아닌 AI로 완성한 가상의 배우 마테오가 자리하고 있다.
마테오는 육체도, 성대도, 실제 인간의 얼굴도 없다. 대신 딥러닝 기반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얼굴과 음성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실제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이야기에 몰입한다. 마테오의 눈빛과 표정, 말투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감독과 작가가 준비한 대본과 연출 지시를 기반으로 감정을 담아 ‘연기’와 ‘발화’를 구현한 AI는 분명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관객에게는 공감과 몰입을 가능케 하는, 엄연한 ‘배우’로 거듭났다는 뜻이다.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시각적 효과나 음성 합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AI가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스토리텔링의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인간 배우 없이도 ‘영화적 감정’을 재현할 수 있음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첫 사례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영화 <COZI,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콘텐츠아카데미>,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 <COZI>

지역 감성까지 구현한 <COZI>의 시도

AI 영화가 지역 문화 콘텐츠와 만나 더욱 특별한 의미를 만든 영화도 있다. 제주도의 역사와 정서를 AI로 복원한 작품 <COZI>는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가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픈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 역시 실제 배우 없이 순수 AI 창작물로 완성된 것으로, 등장인물과 배경이 모두 AI 이미지 생성 도구인 미드저니(Midjourney)로 탄생했다. 텍스트 입력만으로 고해상도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인물의 표정과 배경 분위기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데 강점을 지닌 이 도구는, 지역의 정서와 시공간을 복원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이후 런웨이 ML(Runway ML)과 클링 AI(Kling AI) 같은 AI 영상 합성 툴이 이 정지 이미지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바꾸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감정을 입힘으로써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듯한 장면을 완성했다.
음성 또한 AI의 힘으로 재현됐다. 제주 방언 나레이션은 일레븐랩스(ElevenLabs) 기반 AI 보이스 클로닝 기술로 구현했는데, 실제 제주 사투리를 학습한 AI가 자연스러운 억양과 감정까지 담아낸 덕분에 별도의 녹음 없이도 지역 특색이 살아 있는 목소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COZI>는 ‘존재하지 않는 배우와 음성’으로 지역의 기억과 감정을 생생히 되살린 작품으로, 제주 글로벌 AI영상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그 완성도와 예술적 가치를 입증했다.

누구나 만드는 영화 시대: AI의 힘

이 두 사례는 AI 기술이 영화 제작의 여러 한계를 허무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첫째, 제작 비용 절감이다. 배우 캐스팅, 촬영 장소, 조명, 음향 같은 전통적 제작 요소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낮아지면서 소규모 팀이나 개인 창작자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영화 제작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지역에서는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창작에 한계를 느꼈던 이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창작 접근성 확대다. 고가 장비나 전문 인력 없이도 누구나 AI 도구만 있으면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는 독립영화는 물론 지역 문화 콘텐츠 산업에도 긍정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지역 영상 제작자와 창작자가 AI를 적극 활용할 경우, 기존 자원 한계를 극복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AI 영상 제작 도구들은 이미 웹 기반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다. 대부분은 무료 체험 기능을 제공하고 있어 지역 창작자들도 부담 없이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감정을 연기하는 AI, 창작의 경계를 넓히다

<마테오>와 <COZI>는 각각 ‘존재하지 않는 배우’와 ‘존재하지 않는 지역 기억’을 구현한 AI 영화의 대표 사례다. 공통적으로 실제 인물이나 현장을 촬영하지 않고도, 감정이 담긴 표정과 자연스러운 말투, 지역 정서가 반영된 언어와 풍경을 구현해냈다. 중요한 것은 이 AI들이 단순히 시각적·청각적 요소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몰입을 유도할 수 있을 정도로 ‘연기’와 ‘정서’를 전달했다는 점이다.
이는 AI가 이제 창작 도구를 넘어, 스토리텔링의 감정적 동력을 구성하는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 배우의 부재 속에서도 감정과 서사의 흐름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은, 향후 AI와 인간 창작자의 협업 방식, 나아가 창작의 정의 자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실험이 곧바로 인간 배우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AI가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구현할 수는 있지만, 즉흥적인 감정 반응이나 맥락에 따른 창의적 해석에서는 아직 인간 배우의 직관과 경험을 따라잡기는 어렵지 않을까? 특히 관객과의 교감은 단순한 표정이나 억양 이상의 복합적인 요소에서 비롯되며, 이는 오랜 훈련과 예술적 감각을 통해 다져지는 인간 배우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AI 배우와 인간 배우의 공존을 묻다

결과적으로, AI 배우와 첨단 영상기술이 영화 제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지만 이와 같은 변화에는 현실적 고민이 따라온다. 실제로 일부 영화 제작자와 배우들은 AI가 인간 배우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워한다. AI 배우가 점차 고도화되면서 전통적인 연기자의 역할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창작의 주체성과 예술적 진정성에 대한 논쟁도 빈번하다. 특히 배우들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이 담긴 연기가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인간만이 전달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과 생명력을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1)
실제로 최근 한 채널을 통해 모 배우는 “10년 안에 사라질 직업 리스트에 배우가 포함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위기감이 크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당시 패널이었던 뇌 장동선 박사는 “우리가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스크린 속 연기 때문만이 아니다”면서 “그들의 일상, 성격, 가치관까지를 아우르는 ‘페르소나(persona)’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고 덧붙였다.2)
AI 배우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이 시대, 우리는 과연 AI 배우의 제작 효율성과 편리함을 선택할 것인가, 인간 배우만이 지닌 고유한 감정과 깊이를 지켜낼 것인가? 혹은, 어떻게 AI 배우와 인간 배우의 ‘공존’을 찾아갈 것인가? 그 귀추가 주목된다. 1) https://www.aifnlif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95
2) https://m.mk.co.kr/news/hot-issues/11324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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